핑계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는가?

척추 등판을 15cm나 절개하고 두개의 고정핀을 척추에 박는 세 시간 반의 대수술이 끝났다. 처음엔 고통에 몸 살짝 움직이기도 힘들더니 차츰 통증이 괜찮아져서는 자꾸 딴 생각이 든다. 누워있으면 입원병실 천정이 온통 바다로 보인다. 들어누운 병상침대는 딱 2인승 배낚시 보트요, 일자 줄무늬의 헐렁한 환자복은 낚시복이 되고 척추와 복부를 감싼 복대는 구명조끼가 된다. 지금 달 크기는 어떻게 되고 물때는 몇 물인가, 만조와 간조시간은 어떻게 되지? 늘상 낚시생각만 하다보니 그래도 답답한 병실, 흡사 어디 창살에 갇힌 느낌도 든다.

 

정말 열심히 걷기운동을 했다. 끝간 거리가 백 여미터 되는 병동 복도를 5회 왕복했다. 총거리로는 1km, 아침부터 저녁까지 두 시간 간격으로 일곱번을 걸었으니 하루  7km가 된다. "아버님이 제일 열심히 운동하세요." 태어나서 처음 듣는 '아버님' 호칭에 기분이 살짝 나쁘긴 하지만 간호사들에게 평가도 받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 같은 날 디스크 수술을 받았던 환자들을 물론이고 그 전에 수술했던 몇몇의 환자들보다 먼저 퇴원을 했다.

 

퇴원후에도 비오는 날을 빼고는 집 옆 초등학교 운동장 400m트랙을 다섯바퀴씩 매일 걸었다. 회사를 쉬는 날은 아침 저녁 2회, 평일은 퇴근후 1회씩. 제대로 된 운동이라곤 귀빠지고 나서 지금까지 변함없는 숨쉬기운동이 전부였던 내가 개과천선, 새사람이 된 것이다. '운동은 건강에 나쁘다'는 지론을 펼쳐오던 나의 이런 모습을 아는 이들이 보면 필히 '저거 미친 거 아냐?'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간 긴 병가로 인해 면목이 없는 회사를 위한 운동도 아니었고, 두 달 여의 병 수발을 해준 집사람을 위한 마음 씀씀이도 아니었다. 낚시, 오로지 낚시였다. 빨리 회복해서 배도 타고 저킹질도 해야지. 1미터 넘는 부시리 하나 걸려면 허리가 문제일테니 열심히 걸어서 허리근육도 튼튼히 해놓아야지.

 

재활 걷기운동을 하면서 걱정거리가 하나 생긴다. '몸이 나아지면 바로 낚시를 갈 수 있나? 장비도 미리 준비해 둬야지' 필요한 장비 목록을 찾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장비로도 충분히 다녔던 낚시인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든 탓이다. 헤아려봐도 생각이 나질 않아 불편한 허리를 의자에 앉히고 낚시 쇼핑몰을 뒤적거렸다. 나온다. 필요한 목록들이. 이것들 없이 지금까지 어떻게 낚시를 다녔는지 참 불편했겠구나 하고 스스로 안쓰러워 하면서...

 

 

1. 베이트릴 추가 구매

 

가지고 있는 릴은 배낚시에 주종으로 쓰는 고가의 다이와 리버드랙 솔티스트와 저가의 아부가르시아 블루맥스, 두 개의 베이트릴과 아부가르시아 2500번 시트러스 스피닝릴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베이트릴 하나가 더 필요하다.

 

 

블루맥스는 이미 썸바가 먹히질 않고 드랙도 가끔 헛돌아 폐품이나 다름없다. 튼튼하고 성능좋은 리버드랙 솔티스트 하나로도 충분하겠지만 낚시 좋아하는 딸아이 지수가 동행할 땐 어떻게 하란 말인가? 좋은 놈으로 하나 더 장만해두어야 걱정이 없겠다. 지수만 낚시를 가겠는가? 어쩌다 직장동료가 같이 갈 수도 있고 거친 바다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예비용으로 하나 더 장만해 둬야 하니 깊이 생각말고 일단 지른다. 사람이 근심이 많으면 건강에 좋지 않은 법이다. 

 

다이와 렉사 300H

근심은 빨리 해소하는 게 좋다. 굳게 믿는다.

 

 

2. 인치쿠와 립그립 그리고 계측줄자

 

소모품인 인치쿠가 얼마 안남았다. 10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보트를 띄우고 낚시를 하는 탓에 밑걸림으로 끊어내는 일이 종종 있어 4개가 남았다. 이것도 어쩐지 불안하다. 재수가 없을려면 하루에 5개도 버릴 수 있는데 충분히 여분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그래도 소모품인 인치쿠의 가격에 대한 부담이 있는지라 폭풍검색을 통해 개당 4천원하는 제품을 찾아냈다.

그래, 이거야. 튼튼하고 잘빠지게 생겼고 가격 저렴하니 금방 매진이 될거야. 이런건 재고 있을 때 사둬야지 낚시가서도 마음 든든하니 좋겠다 하고 지른다.

 

 

고기를 낚으면 들어올릴 립그립도 하나 있어야겠다. 지금까지야 포셉가위로 해결했지만 큰 고기가 낚이면 이로는 힘들지. 저번 지수가 광어를 올렸을 때도 포셉가위로 드는데 힘들어했잖아. 물고기들 중에 이빨이 날카로운 녀석들도 많으니 튼튼한 립그립 하나는 마련해 둬야지.

 


그리고 물고기를 낚고 립그립으로 들어올리면 뭐하나. 대체 이놈이 몇 cm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닌가. 집에 가서 재봐도 되겠지만 생생한 현장감이 사진에 남아야지. 얼마 안되니 이것도 하나 장만해둘만해. 바로 클릭하여 장바구니로 담는다. 

 

어드벤티지 인치쿠, 챌리온 메탈샤크 KCG-003과 아부가르시아 프리미엄 줄자

역시 '내 결정은 항상 옳았다'는 신념으로.

 

 

3.  낚시전용 시계

 

낚시갈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물때를 보고 간조,만조 시간을 확인하는데 낚시를 하다보면 시간 확인이 어렵다. 그때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시로 변하는 바다날씨를 예측해야 하는데 지금의 일반 기상예보로는 현장의 예보를 알 수가 없으니 난감한 일이다.

 

 

사람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바다의 날씨가 더욱 중요하니 이를 해결해줄 시계가 필요하겠다. 시간 확인은 기본에 물때 확인, 현재 기압의 변화로 이후의 기상을 예측해주는 정보시스템, 그리고 먼바다에서 필요한 나침반 기능까지 낚시에 필요한 필수 기능은 다 갖췄으니 꼭 필요한 물건이다.그리고 바다에서 젖은 손으로 스마트폰 자주 만지면 금방 못쓰게 된다. 백만원 가까이 되는 스마트폰을 그리 다뤄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아니다. 위급상황에 놓였을 때 나의 목숨이 이 시계 하나로 살아날 수도 있는데 이 정도면 오히려 싼 측에 든다. 역시 장바구니로 직행시킨다. 다시 한 번 보니 전지도 태양열 충전방식이라 방전 걱정없이 쓸 수 있겠다.

 

손목에 달라진 시계를 보고는 집사람이 묻는다. "그 시계 안보던 건데 산거야?" "어. 그전 시계가 방수기능이 다 돼서 손목에 땀만 나도 유리에 습기가 차" 이건 핑계가 아니다. 사실이다. "비싸게 생겼는데 얼마야?" 역시나 안물어볼 리가 없지. 이미 대답은 준비해뒀었다. "전자시계가 비싸봐야 얼마나 비싸겠어. 그것도 카시오 건데." 학생시절 길거리 리어카행상에서도 팔던 국민시계, 카시오 전자시계 안차본 사람 어디 있겠는가? 더 이상 안물어 본다. 사람은 역시 준비성이 철저해야 돼.

 

프로트렉 130T-7V

'역시 나의 결정은 완벽해'   

 

 

4. 그후

 

완벽하다. 이제 보트 시동걸고 떠나면 그만인데 걷기가 문제다. 재활 걷기를 하면서 일정정도 걷기가 편해지더니 어느순간 일정정도에서 멈추고는 더이상 좋아지질 않는다. 몸이 휘청이지는 않지만 아직도 절름걸음이다. 오늘도 열심히 걸었으니 이 밤만 지나면 절뚝거림이 좀 나아지겠지 하는데 매번 아침이면 그대로다.

 

그러니 저 친구들의 신세는 어떻겠는가? 인치쿠는 바다냄새도 맡아보지 못한채 태클박스안에 일렬횡대로 줄맞춰 누워 있있다. 다른 녀석들 신세도 마찬가지다. 립그립과 계측자 역시 물고기는 구경도 못하고 가방 주머니에서 대기중이다. 다행히 낚시시계의 신세는 낫다. 비록 도심에서 제 본 역할을 못하고는 있지만 요즘 같은 변덕스런 장마철에 유용한 기압정보를 손목에서 알려준다.

 

3일 후면 주말이다. 날씨예보는 맑음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녀석들을 꺼내줄 수는 없다.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후회나 반성은 하지 말자. 유비무환이라 하지 않았던가. 잘 산거다. 꼭 사야할 거 때 맞춰 잘 산 거다. 늘 나의 선택은 옳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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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찌바라기
    2015.09.17 16:16 신고

    이게시글 형수님은 안보시나요...ㅋㅋ
    형님이나 저나 안지기에게 괘변을 토하는 건 공통점입니다.

    • 2015.09.18 11:32 신고

      ㅎㅎㅎ
      안봅니다. 절대 사이트 알려주질 않지요.
      찌바라기님도 캠핑 다니면서 이런 짓 많이 했지요?
      제 동생도 배 타고 바다에 나가서야 가방에서 슬쩍 꺼내는 것들 많습니다.
      집에 들어갈 때는 또 가방 깊숙히 숨겨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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